[불교신문] 몸도 마음도 배부른 날…모두가 착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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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템플스테이] 문경 대승사

문명이 변변치 않았던 옛날 사람들은 자연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24절기는 불안한 그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설명서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스물네 조각으로 등분하여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고 생계에 적용했다. 음력도 이로운 것이어서 달의 몸집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날짜를 셈했다. 음력 7월15일인 백중(百中)은 백종(百種)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본연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백 가지 열매가 무르익는다는 뜻으로 농업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양력으로는 말복 즈음이다. 무더위란 인체에는 고역이지만 식물에는 폭발적인 성장의 에너지여서 웬만한 과일과 채소는 백중 이전에 다 거둔다. 풍부한 먹을거리에 기대어 이때마다 민속에서는 잔치를 열고 절에서는 스님들을 공양하고 조상을 위해 재(齋)를 지냈다. 혹서 속에서 밭일하느라 고생한 백성들에게 베푸는 날이다. 머슴들에겐 이날이 휴일이었고 주인에게서 받은 용돈을 들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삶에는 쉼표가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백중은 매우 탐스러운 쉼표다.
선객들의 오래된 ‘핫플’
인간을 극복해야만 깨달음이고 그래서 깨달으려는 공간은 어디나 인간 너머에서 외롭고 드높고 청정하다. 대승사(大乘寺)는 경상북도 문경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진평왕 9년(서기 587년)”으로 명시돼 문헌적 근거가 확실하다. 사불산 자락에 있으며 사불산은 사면(四面)에 부처님이 그려진 바윗덩이가 하늘에서 별안간 떨어졌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유난히 외지고 깊어서 교통은 불편하다. 다만 절 입구부터 뭔가 형언할 수 없이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걸출한 선사들이 참선했으며 주변의 묘적암과 윤필암은 유서 깊은 수행처다.

성철스님은 여기서 3년 동안 눕지 않았다. 대승사 템플스테이에선 전설적인 수행자들의 실제 공부법을 배울 수 있다. 권기명 템플스테이 팀장은 이 신비한 정기가 좋아 눌러앉았다. 포항에서 철강업체를 운영했었다. 요즘의 템플스테이는 그야말로 젊은이들 천지이지만 대승사에는 주로 중장년 이상이 찾는다는 귀띔이다. 물론 쾌적하고 깔끔한 통유리의 숙소는 남녀노소 누구나 선호할 만하다. 108배를 하면 인증서를 준다. 성찰에는 은퇴가 없다.
화합과 독려가 ‘대승불교‘
윤달이 끼어 올해 백중은 한 달 늦은 9월6일 토요일이었고 마침 템플스테이도 겹쳤다. 10월 초까지 후텁지근했던 작년보다는 그나마 낫다. 방문객 가운데에는 시 쓰고 캘리그라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중 날에 출가한 주지 효원스님은 시를 잘 외운다.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시담(詩談)을 나누었다. 월북시인 백석의 애인이었던 김영한 여사가 고급술집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가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기자가 “100억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자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답했다는데 그리움만이 사랑임을 새삼 검증했다. <금강경> ‘사구게’의 천문학적인 값어치도 생각났다.



남편을 일찍 여읜 아주머니가 효원스님의 휴대폰 영상 속에서 두 눈에 흰 천을 감고 시를 암송했다. “살아있어야만 피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슬픔은 그다음 문제다”라는 내용이었다. 송시(誦詩)는 같이 따라죽을 수는 없고 어쨌든 살아내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다. 시 애호가들 특유의 차분함과 소녀다움으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저녁을 보냈다. 고독은 멋져 보이지만 독성이 강하다. 함께 모였을 때 즐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승(大乘)이겠다.
그윽한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
여러 인연을 맺었다. ‘사불이’는 몹시 순하고 영특한 진돗개다. 외부인의 정체를 구별할 줄 안다. 순순히 다가와 안겼는데 밤새 짖었다고 한다. 권수정 씨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IT기업에 다니다가 손수 회사를 차렸다. “대승사의 자연과 스님의 친절이 좋아 자주 들러서 부처님을 만난다”고 했다. 불교학생회 동아리방이 없어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언니인 권민경 씨는 영어 통번역에 종사한다. 크게 성장한 불교박람회를 높이 평가했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언어에도 열량이 있다. 일상에서는 덕담을 주고받기가 어렵고 마음이 줄곧 날카로워서 그러기 싫다.

다행히 물질이 넉넉해지는 백중과 정서가 넉넉해지는 템플스테이가 절묘히 맞아떨어졌다. 특별한 시공간에 힘입어 마음이 그나마 열린다. 백중은 하안거 해제일이기도 하다. 스님들도 봄부터 3개월간 용맹정진하느라 대단히 힘겨웠다. 더구나 먹고살자고 하는 일도 아니다. 그 자체로도 풍요롭고 거룩한 날인데 아직 한고비가 더 남았다. 한 달 뒤 벼를 수확해야 한해의 완성이고 추석 앞에서 평온하고 당당할 수 있다. 캘리그라피는 글자도 글귀도 아름답다. 오늘 열심히 땀 흘렸다면 내일도 혈색이 돈다.

참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법(1박2일)
: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20분까지. 참선의 이론과 실참, 예불, 타종체험 및 사물관람, 암자순례 등.
찾아가는 길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승사길 283
점촌역 또는 점촌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점촌시내버스터미널로 이동. 창구리 및 가좌리행 시내버스를 타고 전두리 대승사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로 1시간.
문의: (054)552-7105
예약: www.templest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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